[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②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②
  • 이동소 작가
  • 승인 2021.10.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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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소 작가
이동소 작가

3. 요양병원에서 노치원으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지 꼭 한 달쯤 되었을 때다. 어머니가 가톨릭신자라 기왕이면 가톨릭재단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면 좋겠다 싶어 수소문을 해서 예약을 했었는데 거기서 자리가 비었다고 연락이 왔다. 기쁜 마음으로 주말에 어머니를 퇴원시켜 새로 갈 병원을 보여드리러 갔다. 동생 집에서도 가깝거니와 바로 곁에 성당도 있고 시설이 너무 잘 되어 있어 어머니도 우리도 흡족해하며 월요일 입원하기로 정하고 돌아왔다. 집에 와서 다시 옷가지며 입원물품을 정리해놓곤, 이틀간은 어머니랑 가을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병원에 다시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오색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산자락에서 사랑하는 아들이랑 딸이랑 맛있는 식사를 하고, 멋진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처럼 행복해 하셨다. 어쩜 이게 정신이 맑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가을나들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혼자 눈시울을 적셨다. 그런데 뜻밖의 사단이 났다. 이틀째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어머니가 요양병원엘 가기 싫다고 하신 것이다. 수녀님께 겨우 부탁을 해서 힘들게 잡은 병원이니 일단 입원해서 한 달만 있어 보자고 달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내가 어머니께 왜 그러시냐고 연유를 물었다. 그제야 어머니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가슴 속에 맺힌 이야기를 다 꺼내셨다. 

병원에 간 건 실은 자의自意가 아니고, 이모 이야기를 듣곤 자식들 편하게 해주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단다. 낮엔 가족들이 면회를 오지만, 잠이 들 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곤 당신이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밤마다 울었다고 하셨다. 게다가 간호사들이 치매환자들을 마구 대하고, 기저귀를 갈 때마다 짜증을 내는 소리에 어머니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머지않아 그게 당신이 당할 일이다 싶으셨던 게다. 이제 하루를 살아도 아들 얼굴 보며 살지, 다시는 병원엔 안 가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말씀을 다 듣곤 나는 어머니를 안고 울고 또 울었다. 내가 또 불효를 했구나! 바보처럼, 어머니 말씀만 믿고 어머니가 병원에서 더 즐겁게 생활한다고 좋아했던 우리 자식들이 또 죄를 지었구나!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머니는 다시 동생 집에 계셨다. 병원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어머니는 한동안 집에만 계셔도 무척 행복해하셨다. 끼니를 굶어도 매일 자식 얼굴을 보며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제 알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나자 어머니나 우리는 또 지쳐갔다. 어머니는 심심하다고 투정을 하며 낮부터 우리 형제들을 불러대고, 우리가 못 가면 일하던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셔서 집으로 달려오게 했다. 무엇보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혈압약과 치매약을 드셔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다. 우여곡절을 한바탕 치르고 나서 결국 형제들이 의논해서 선택한 게 노인학교였다.

요즘은 어머니가 노치원엘 나가신다. 장기요양환자들을 위해 국가가 후원하는 기관이다. 학생처럼 아침마다 등교를 하시니 모든 게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아침에 스쿨버스가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 거기서 점심식사는 물론 공부랑 놀이도 하고 간단한 간식까지 드시곤 저녁 5시 반쯤 귀가를 하신다. 어머니는 머리도 잘 돌아가는 데다 다른 노인들보단 건강상태가 양호하시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거의 반장을 하신단다. 강의 듣는 것도 좋아하고, 손재주가 좋아 무얼 하든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내니 요양사들 간에도 인기가 최고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애살은 우리 피의 DNA인 걸 어쩌랴.

제일 힘든 건 날마다 준비물과 입을 옷을 코디하는 일이다. 남동생이 그런 건 서투르다 보니, 거의 매일 내가 가서 내일 입을 옷을 코디해드린다. 학교에서 목욕을 하는 날엔 속옷도 신경 써서 챙겨 넣어드린다. 그런데 치매가 조금씩 진행됨에 따라 이 일도 한계에 도달했다. 기껏 입을 옷을 소파 위에 나란히 챙겨두고 왔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옷을 어디로 다 치우고 없으니 말이다. 그럴 때면 남동생이 다시 이것저것 골라서 입히느라 진땀을 뺀단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와서 며칠 전엔 어머니 서랍장을 통째로 비워 정리를 했다. 속옷은 속옷대로, 티셔츠와 블라우스는 칸마다 분리해 넣고, 두꺼운 옷은 따로 상자에 넣어 창고방으로 옮기고, 여름 나들이옷은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 찾기 쉽게 정리를 했다. 무려 5시간에 걸쳐 힘들게 옷정리를 마친 후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사를 차려 어머니 방에 들어갔더니 어머니는 어느새 창고방에서 옷을 모조리 가지고 와서 서랍장에 다시 꾸역꾸역 넣고 계셨다. 해맑게 웃으시면서 “겨울이 와서 내가 서랍장 정리를 하고 있다.”고 하신다. 순간, 나는 퍼질고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이런 지독한 병에 걸려서 애를 먹이냐고 넋두리를 하면서….

한참 울다가보니 곁에 놓인 작은 가방에 무엇인가 가득 들어있었다. 가방에 마산에 있는 막내 동생 이름이 커다랗게 씌어 있어 풀어보니, 아무 데도 쓸모없는 비닐손지갑이며 싸구리 장식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그게 다 당신이 어렵게 돈을 모아서 싸둔 보석이라고 자랑을 했다. 그 옛날 떠돌이장사를 하러 다니느라 젖도 제대로 못 먹인 막내딸이 어머니에겐 아직도 안쓰럽고 챙겨주고 싶은 아킬레스건이었던 게다.

어머니 기억력이 자꾸 쇠퇴하면서 날마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생긴다. 어제도 종일 어머니 시중을 들고 저녁식사까지 챙겨드리고 집에 오고 있는데, 막내 여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언니 니가 통 소식이 없다고 욕을 마구 하시더라. 힘들게 박사까지 시켜놓았더니 제일 배은망덕하다고...” 나는 차를 도로에 대고 엉엉 울었다. ‘원래 잘하는 딸한테 더 의지해서 그런 거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는 동생의 말도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어두운 터널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젠 한 시간 전의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시니 기가 찬다. 갑자기 내 신세가 서럽다. 내 나이도 이제 곧 칠순이다. 지금도 안 아픈 곳이 없고, 마음도 너무 허전하다. 예전 같으면 나도 집안에서 보호를 받을 노인이 아닌가 말이다. 

제일 기가 차는 것은 옷이나 먹을 것을 자꾸 감추는 일이다. 큰마음 먹고 외출복으로 사드린 옷을 입히려고 찾으면 없다. 귀한 옷이라 누가 훔쳐갈까 어디 꽁꽁 숨겨두었다고 하신다. 맛있는 빵이나 과자, 두유 등 간식을 사두어도 다음 날이면 어디에 숨겼는지 하나도 없다. 한 달쯤 지나서 그게 침대 밑이나 창고 방구석에서 썩어서 나오곤 한다. 아마도 어머니 머릿속엔 아직도 그 옛날 헐벗고 굶주리던 기억이 인장처럼 박혀 있어 본능적으로 그걸 챙기시는 게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원망보단 눈물부터 핑 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자꾸 문제가 생긴다. 제일 큰 문제는 누군가가 당신의 물건이나 돈을 훔쳐갔다고 착각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등교할 때 매고 다니시라고 핸드백을 몇 개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와 비슷한 가방을 다른 노인이 매고 왔단다. 그날로부터 계속 나한테 전화를 해선 당신이 아끼는 가방을 친구가 훔쳐갔으니 신고를 해 달라고 하셨다. 장작 어머니 가방은 매직 팬으로 당신 이름을 커다랗게 붙여서 침대 밑에 숨겨두고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보호자인 남동생에게 호출전화가 왔다. 어머니 문제로 상담을 하고 싶다고 원장이 직접 전화를 한 것이다. 문제아로 호출을 받은 학부모처럼 동생이랑 나는 기가 잔뜩 죽어 학교엘 갔다. 이젠 가방이 아니라 현금이나 보석을 도난당했다고, 심지어 친구 누구가 가져갔다고까지 말을 하니, 이러시면 계속 학교엘 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영특하시던 우리 엄마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단 말인가.

일찍 병상에 누운 남편 대신 가장이 되어 5남매 자식들을 먹이고 교육시키느라 버둥거리며 살았던 그 옛날의 아픈 기억이 지금까지도 어머니 뇌리엔 생생하게 남아있었던 게다. 자식들을 위해 무엇이든 남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보낸 세월의 흔적은 고스란히 뇌에 각인이 되어, 이제 그게 피해망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니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말이다. 눈물만 글썽거리며 할 말을 잃은 보호자들을 보며 원장은 마음이 아픈지, 힘들지만 앞으로 함께 노력해보자고 되레 우리를 위로한다. 아들과 딸이 당신을 데리려 왔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며 한껏 신이 난 엄마 손을 잡고 학교를 나오는데, 하늘에선 눈물처럼 소낙비가 퍼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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