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가 전무했던 소아 퇴행성 뇌신경질환 '레트증후군(Rett syndrome)' 영역에 최초의 신약 옵션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약 후보물질 '트로피네타이드(Trofinetide)'를 평가한 마지막 임상 담금질 결과, 언어 및 발달 지체, 손의 기능과 보행 장애, 호흡이상 등 레트증후군과 관련한 주요 증상들을 개선시키는 치료혜택에 파란불이 켜진 것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진행된 미국신경과학회(AAN) 연례학술대회 석상에서는 레트증후군 치료 신약 후보물질인 트로피네타이드의 3상임상 성적표가 공개됐다. 여기서 트로피네타이드는 미국 소재 바이오테크 아카디아제약(Acadia Pharmaceuticals)이 개발한 신약 파이프라인으로, 레트증후군 소아 환자에서의 증상 개선효과를 보고한 것이다.
책임저자인 미국 밴더빌트의대 소아청소년과 Jeffrey L. Neul 교수는 발표를 통해 "승인된 치료법이 없는 레트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신약 3상임상 결과 혜택이 보고된 것에 기대가 크다"고 평가했다.
◆증례보고 이후 30년만에 발병원인 밝혀져… "X염색체 MECP2 유전자 이상"
통상 소아 퇴행성 뇌신경질환인 레트증후군의 경우, X염색체와 관련한 우성질환으로 여아 출생 1만~1만5,000명당 1명 정도의 발생률을 보고하고 있다.
독일의 Andreas Rett 박사가 1966년 학계에 레트증후군 사례를 최초 보고한 이후 다양한 임상적 증례들이 논의되다가, 지난 1999년에 들어서야 주요 발병원인이 밝혀졌다. X염색체 안에 있는 MECP2 (Methyl-CpG binding Protein-2) 유전자 이상이 병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것.
이에 따르면 해당 유전자의 산발적 돌연변이로 인해 레트증후군이 발생하게 되며, 점진적으로는 언어와 운동발달이 멈추거나 퇴행을 보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환자 대부분이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에 걸친 어린 여자아이들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발달 정지 및 언어 지연 소견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로서도 이렇다할 치료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환자의 발달 상황을 보존하는 목적으로 재활치료를 진행하거나, 뇌전증이 동반된 경우 항경련제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Neul 교수는 "레트증후군은 심각한 지적장애와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 환자는 정상적으로 말하거나 손을 움직이는 기능을 제한받기 때문에 표준화된 검사를 진행하기조차 어렵다"면서 "이로 인해 때때로 자폐증이나 뇌성마비, 비특이적인 발달지연 등으로 오진을 내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관전 포인트1. 경구용 신약 개발 진행…트로피네타이드 "IGF-1 유사체 계열"
따라서 레트증후군 분야 유일한 약물 옵션으로 기대감이 큰 트로피네타이드의 임상 진입에는 많은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신약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린 트로피네타이드의 경우, 뇌의 정상적인 발달과 손상에 관여하는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1)의 아미노기 말단 트리팹타이드(amino-terminal tripeptide)에 합성유사체로 작용한다.
주목할 점은, 트로피네타이드가 잠재적으로 신경염증을 감소시키고 신경 시냅스 기능을 도와 레트증후군의 주요 증상들을 개선시키도록 설계됐다는 부분. 실제 앞선 2상임상 결과, 의료진과 간병인이 평가한 치료적 혜택을 놓고는 위약 대비 개선효과가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이러한 임상자료를 근거로 트로피네타이드는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레트증후군 및 희귀소아질환(Rett syndrome and Rare Pediatric Disease, 이하 RPD) 치료제로 신속심사 및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상태다.
트로피네타이드의 3상임상 결과는 올해 AAN 2022 학술대회에서 공개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중맹검 방식으로 진행된 해당 'LAVENDER 연구'에는 5세~20세의 레트증후군을 가진 여성 환자 187명이 평가대상이 됐다. 이들 모두는 과거에 습득한 언어 능력 및 손의 움직임 기능을 상실했고, 뒤뚱거리며 걷는 보행장애를 가졌거나 전혀 걸을 수 없는 퇴행을 경험한 환자들이었다.
연구를 살펴보면, 전체 12주 동안의 추적관찰기간 동안 총 93명의 환자에는 경구용 트로피네타이드(1일 2회)를 투약해 위약군(94명)과 개선혜택을 저울질했다.
복합 일차 평가변수는 간병인이 평가하는 '레트증후군 행동설문지(Rett Syndrome Behavior Questionnaire, 이하 RSBQ)' 점수였다. RSBQ 지표의 경우 레트증후군과 연관된 행동 및 손의 기능, 보행능력, 호흡이상 증세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더불어 의료진이 레트증후군의 증세 개선과 악화 정도를 평가하는 일곱 가지 'CGI-I (7-point Clinical Global Impression–Improvement)' 지표 변화도 비교됐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해 "해당 복합 일차 평가변수는 임상연구에서 충족시켜야 할 매우 높은 기준"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이차 평가변수는 간병인이 환자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평가하는 'CSBS-DP 양육자평가(Communication and Symbolic Behavior Scales Developmental Profile Infant-Toddler Checklist-Social, 이하 CSBS-DP-IT Social)' 결과로 설정됐다.
◆관전 포인트2. 변비 달고사는 레트증후군 환자…"투약 환자 80% 이상 설사"
주요 결과는 어땠을까. 트로피네타이드 투약 12주차 분석 결과 위약군과 비교해 RSBQ 지표(least squares [LS] mean change -4.9 vs -1.7; P = .0175; Cohen's d effect size = 0.37) 및 CGI-I 지표(LS 3.5 vs 3.8; P = .0030; Cohen's d effect size = 0.47)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효과가 확인됐다.
또 이차 평가변수로 설정된 CSBS-DP 양육자평가의 경우, 트로피네타이드 치료군은 위약군 대비 통계적 유의성을 달성한 것으로 보고했다(LS mean change -0.1 vs -1.1; P = .0064; Cohen's d effect size = 0.43).
Neul 교수는 "모든 분석 지표에서 트로피네타이드 활성약물의 유의성이 관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증세를 개선시키는 경향성이 확인됐다는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CSBS-DP 지표의 경우에서도 트로피네타이드 치료를 통해 더 나은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안전성 평가에서는 비교적 경증이거나 중등증 수준의 이상반응들이 보고됐다. 중증 이상반응 발생률은 트로피네타이드 치료군과 위약군 모두에서 3.2%로 동일했다. 트로피네타이드 치료군에서의 가장 흔한 이상반응은 설사(80.6% VS 위약군 19.1%) 및 구토(26.9% VS 위약군 9.6%) 순이었다.
개발사인 아카디아는 "레트증후군 환자 대부분은 심각한 변비 증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약물 치료 결과 설사 이상반응이 높게 관찰된 부분은 주목된다"면서 "현재 해당 임상평가를 완료한 환자의 95% 이상이 트로피네타이드를 오픈라벨로 투약하는 임상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트로피네타이드의 개발사인 아카디아는 올해 2월 알츠하이머 치매와 관련한 환각 및 망상 증상 치료제로 '피마반세린(제품명 뉴플라지드)'의 미국FDA 신약보충허가신청서(supplemental New Drug Application, 이하 sNDA)를 제출한 바 있다. 작년 회사 측은 피마반세린의 유효성 검증에 차질을 빚은 직후, 치료 범위를 '전체 치매' 환자가 아닌 '알츠하이머 치매'와 관련한 정신병으로 노선을 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