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야타족과 마술사
[곽용태 칼럼] 야타족과 마술사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3.03.1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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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전문의.

80년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90년대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90년대는 이전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는 1988년 맥도날드가 한국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세계적으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변화 보다는 젊은 혈기를 주체 못하는 저에게는 당시 이전과 달라진 서울, 특히 세련된 압구정의 화려한 네온 간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젊은 사람들, 그리고 예전과 달라진 남녀문화 등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중 제가 가장 신기하고 놀랐던 것이 "야타" 문화였습니다. 근사한 차를 타고 거리로 나와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하면 "야, 타." 라고 소리치면 마법처럼 예쁜 여자가 차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지요. 저에게는 부러움과 호기심의 대상이었지요. 저도 언젠가는 이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문제는 아쉽게 저는 근사한 차를 살 능력도, 능력 있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죽은 후 환자의 뇌를 부검하면, 특징적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모여서 만들어진 신경반(neuritic plaque)이 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실험 동물에 투약하면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거나 아주 중요한 병태생리와 연관되어 있어 보인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알츠하이머병 환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는 엄청난 의료 및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반면 제약회사들의 눈에는 엄청난 시장이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실지로 일본의 작은 제약 회사였던 에자이는 아리셉트라는 알츠하이머병 약을 개발함에 따라서 단숨에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에 많은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뇌에서 제거하기 위한 약을 개발하기 위하여 뛰어듭니다. 하지만 제약 회사들은 거의 20년간 많은 후보물질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했지만 2021년까지 어떤 약도 임상 실험에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에자이는 자체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2013년에 다국적 제약기술업체인 바이오젠과 손잡고 2015년부터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아주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아두카누맙이라는 단일클론 항체에 대한 두 개의 마지막 임상 연구(ENGAGE와 EMERGE)를 진행하였습니다. 두 임상연구는 거의 유사한 연구 구조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2019년 중간 분석에서 두 임상실험 모두에서 초기 결과가 나오지 않아(효과가 없어) 실험을 조기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자이와 바이오젠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간 임상 실험을 포기하지 못하고, 일정 기간 동안 임상 연구를 계속 진행한 후 다시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임상 실험 중 ENGAGE 연구에서는 효과가 없었지만 EMERGE 연구에서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회사는 매우 바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임상 실험조건이 거의 동일한 두 연구에서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나타나게 하였을까? 필사적인 분석 끝에 연구진들은 이렇게 두 연구가 다른 결과를 보이는 것이 아두카누맙의 용량 차이 그리고 연구 대상군 환자의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FDA에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사연 많은 약은 대논란을 일으킵니다. 당시 FDA 승인위원 11명중 10명은 반대하고 1명은 의견을 유보하는 등 반대가 심하였습니다. 하지만 FDA 다른 위원들이나 일부 신경과 단체들은 지금도 많은 환자가 시시각각 뇌기능의 손상으로 치매에 노출된 상황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병의 경과를 변형시키는 이 약을 승인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추후 데이터를 제공하고 재심사하는 조건으로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을 받았습니다. 원래 가속승인은 아주 시급한 질환에 대해서 예외적으로 생체 표지자 대리지표(surrogate marker)를 이용하여 빠른 승인을 해주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이 이런 시급성을 요하는 질환인지가 우선적인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일부 단체와 회사의 로비가 이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냐는 뒷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FDA가 이 결정을 내린 근본적인 이유는 이 약을 복용한 환자에서 알츠하이머병의 대리지표로 여겨지는 뇌의 베타아밀로이드가 감소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밀로이드 PET검사에서 베타아밀로이드가 극적으로 감소한 것을 보는 순간, 지금 임상 결과가 좋아야만 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증상이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를 들어, 우리보다 지적인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한다고 가정합시다. 우리는 모르지만 외계생명체는 지구에 있는 방사선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이 때문에 곧 지구가 멸망할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외계인은 지구를 스캔하여 가장 방사선이 많이 나오는 지역을 찾았고, 이 지역이 지구의 곳곳에 있는 방사선 폐기물 장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이것을 다 없앱니다. 과연 지구는 구원을 받았을까요? 인간은 방사선이 생태계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농축해서 안전한 곳에 모아 보관합니다. 방사선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잘 관리되는 방사선 폐기장이 위험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환경을 위협하는 것은 바닷가나 공기 중에 관리되지 않고 노출되어 있는 곳이나 그 원인이 위험한 것이지요. 베타아밀로이드도 이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베타아밀로이드도 우리 몸에 특정한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단백질이 우리 몸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용된 이후, 어떤 과정부터는 우리 몸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이 단백질의 독성을 관리하기 위해 이를 모아 다른 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분리시켜서 관리합니다. 이것이 신경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에 있는, 잘 보이는, 그리고 많이 보이는 이 베타아밀로이드가 모여 있는 곳(신경반)에만 눈이 팔린 것입니다. 이런 베타아밀로이드가 모여 있는 것을 뇌에서 제거한다고 해서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나 예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진정으로 병의 원인이나 중요한 병태생리에 밀접하게 연관이 있지 않은 생체표식인자를 약물 치료의 대리지표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드카누맙의 시판 후 임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2023년 FDA에 승인된 레카네맙은 대리지표인 생체표식인자 뿐 아니라 진짜로 중요한 임상에서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레카네맙을 주사한 환자들은 18개월 후에 인지기능 감소가 26% 적고 일상생활 수행 능력 감소도 37% 적어, 위약군에 비해 덜 진행되었습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쉽게 말하면, 시간이 지나도 주사를 맞은 환자들이 덜 나빠진 것입니다. 어쨌든 통계적으로 유의하기 때문에 2년 전과 같은 논란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레카네맙은 이전의 맙 계열 약물과 달리 효과가 있을까요?

이전의 약물은 신경반과 같이 주로 눈에 보이는 베타아밀로이드가 뭉친 섬유(fibrils)에 영향을 주는데 반하여, 레카네맙은 신경반이 형성되기 전의 베타아밀로이드 원시섬유(protofibrils)에 결합하여 제거한다고 합니다. 뭉쳐져 있는 것보다 돌아다니는 것이 더 병을 유발하는 것이지요. 약물 반응을 통하여 병리기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아드카누맙의 일년 사용비용이 5만6,000불, 레카네맙은 2만6,500불입니다. 약 값만 이 정도이지 이 약을 주사 맞기 위해서는 진단과 치료 과정에 베타아밀로이드 PET과 같은 고가의 검사를 같이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당 수의 환자에서는 뇌부종이나 뇌출혈과 같은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약을 주사한다고 해서 증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미래에 악화될 것을 아주 조금 더디게 할 수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겨우 출발선에 서있는 것입니다.

마술사가 무대에 올라갑니다. 수많은 청중들이 환호합니다. 그리고 마술사 옆에는 아슬아슬한 비키니 옷을 입은 미녀들이 있어 청중들의 눈길을 끕니다. TV에서 이를 보는 나는 집사람의 눈을 피해 미녀들을 훔쳐봅니다. 이때 놀라운 마술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결국 감탄하게 됩니다. 야타족도 비슷합니다. 갑자기 압구정동 길거리에 멋진 차를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선글라스를 낀 날라리 청년이 웃으면서 외칩니다. “야, 타… “그러자 여자들이 놀랍게도 스스로 그 차 안으로 사라집니다. 마치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만리장성 안으로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진짜 마술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늘씬한 미녀나 반짝이는 고급 차는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씬한 미녀나 반짝이는 고급 차를 보는 동안 순간적으로 진실을 놓치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미스디렉션(misdirection) 입니다. 말 그대로 전혀 다른 곳을 보게끔 하는 일종의 눈속임 같은 것입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속임을 당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신경학적으로는 무주의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입니다. 우리의 눈은 생각 외로 많은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거의 맹인처럼 못 볼 수가 있습니다. 거대한 나무 앞에서 숲을 보지 못하거나 어떤 일에 집중하면 눈앞에 누가 와도 전혀 볼 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연구하면서 거대한 나무 앞에서 숲을 보지 못하였듯이 너무나 눈에 잘 보이는 베타아밀로이드 덩어리에 눈이 미스디렉션되어서 지금까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사족: 90년대 초반 야타족의 유행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여러가지 웃지 못할 연관된 사회 현상도 있었습니다. 야타족이 돈 많은 부모의 차를 (몰래)가지고 다니며 이성을 유혹하였다면, 돈 많은 자식 덕분에 중고차를 탄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할머니를 향해 "어여 타, 바람 쉬러 가게"에서 유래된 여타족도 있었습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그 당시 힘들게 살다가 성공한 의사인데, 그 당시 못했던 것이 아쉬워서 고급 승용차를 끌고 나가서 지나가는 멋진 중년 여성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고 저에게 이야기합니다. 놀랍게도 그 여인은 쉽게 조수석에 탔다고 합니다. 궁금해진 제가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좀 한을 풀었나? 친구가 어색한 표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차에 타게 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타고 보니 영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노안 때문에  그 여성의 화장발, 선글라스발을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야타든, 여타든, 마술이든, 그리고 연구든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이 잘 보여야 하는 때 말입니다. 물론 다 지나간 웃고자 하는 제 친구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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