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치매안심마을, 중증 치매환자 대상 프로그램 없어 … 실효성 논란
일부 치매안심마을, 중증 치매환자 대상 프로그램 없어 … 실효성 논란
  • 강성기 기자
  • 승인 2023.04.0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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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현재 600 군데 넘게 지정 … 악화되면 치매환자 전문요양원으로 가야

和蘭 호그벡, 마을형 요양시설 대안 … 국공립 치매전담 요양시설 확충 방안도
호그벡마을 =사진: 호그벡(hogeweyk) 홈페이지
호그벡마을 =사진: 호그벡(hogeweyk) 홈페이지

치매환자 돌보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 의도한 일은 아니겠지만 주변인을 무척 당혹하게 한다. 건강할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죄의식 없이 물건을 훔치거나 상스러운 욕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 모습에서 건강할 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잔인한 이별'이라고 불리는 치매. 정상 생활을 해오던 사람에게 소리 없이 다가와 기억력 감퇴 등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를 불러일으켜 결국에는 혼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만드는 무서운 질환이다. 치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인까지 고통에 빠뜨리게 한다.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일상을 위협하는 대표적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치매 환자에 대한 병간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간병 살인’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잇따른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와 중증 지체장애인인 형을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50대 남성. 치매 환자인 아내를 숨지게 한 뒤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한 80대 노인.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국민 10명 중 2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고령화에 가속이 붙으면서 내년이면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도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치매환자가 급속히 늘면서 정부는 치매안심마을, 치매안심병원 등 다양을 대책을 내놓았다. 치매안심마을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치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치매환자와 가족의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 특성에 따라 조성하는 마을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시범사업 시행 후 2019년부터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면서 작년 말 현재 600군데 이상 지정‧운영되고 있다.  

치매안심마을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운영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강사가 마을회관 등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음악·미술 활동이나 체조 같은 치매 예방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치매증상과 치매환자 간호법 등 치매 인식 교육도 한다. 그러나 일부 치매안심마을은 보살핌과 간병이 필요한 중증 치매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빠져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경북 청도군 소재 한 ‘치매안심마을’도 사정은 비슷하다. 80대인 A할머니는 가끔 기억이 깜박깜박하는 것 말고는 다른 증상은 없지만 앞으로 상태가 더 나빠지면 요양원으로 가야 한단다. 치매가 중증으로 진전돼 종일 간병이 필요해지면 현재의 요양보호사가 감당할 수 없게 돼 치매환자를 전문으로 관리하는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자나 그 가족이 감당하기 힘들어 국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도입한 치매국가책임제에 따라 시행 중인 ‘치매안심마을’이 중증 치매환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부 치매안심마을에서 시행 중인 프로그램은 건강한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할 뿐, 정작 24시간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중증 치매환자를 위한 것은 없다. 치매환자가 요양원에 가지 않고, 살던 동네에서 계속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명분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에 치매 관리비용으로 16조 3,000억 원이 들어갔다. 이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치매환자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려면 껍데기뿐인 치매안심마을을 대체할 대안이 시급해 보인다.

서울 용산구가 벤치마킹하려다 실패에 그친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형 요양시설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호그벡 마을은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요양시설이다. 2009년에 세워진 이 마을은 1만6,000㎡ 부지 위에 세계 최초로 세워진 중증 치매환자 요양시설로 주거 시설과 함께 마트, 미용실 등 다양할 생활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150여 명의 치매환자가 20여 개의 주택에 모여 살고 있다.

호그벡 마을은 치매환자가 마트, 미용실, 카페 같은 시설을 이용하면서 혹시라도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곳곳에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다. 또 직원 170명과 자원봉사자 140여 명이 마을 곳곳에 배치돼 치매환자들을 돌본다. 이곳에 사는 치매환자는 더는 환자가 아닌 거주민으로 불린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가운을 입지 않고 거주민 또한 환자복을 입지 않는다.

비영리단체 비비움이 운영하는 이곳은 치매환자들이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거나 요리를 하는 등 스스로 일상생활을 한다. 사회활동을 통해 소속감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유도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도록 해 준다. 

국공립 치매전담 요양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또 다른 방안이 될 수 있다. 관계전문가는 “국공립요양병원이 나서서 치매안심병동을 적극적으로 확충해 나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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