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2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2
  • 최봉영 기자
  • 승인 2017.12.29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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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12편 - 어머니 속의 우는 어머니 껴안기 -이승우의 <검은 나무>

이승우의 <검은 나무>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원래 작품에서 아들은 3인칭의 ‘그’로 서술되지만 이 글에서는 1인칭의 ‘나’로 바꾸어 보았다. 따뜻한 가슴으로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아들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듯해서이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특이하다. 어머니는 아무 곳에서나 치마를 내리고 오줌을 눈다. 치마와 속옷을 발목까지 내린 채 길거리에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는 어머니. 이런 나의 어머니의 모습은 이미 동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왜 이처럼 이상한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것일까? 이것은 독자의 궁금증이기도 하면서 작품 속의 아들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작품은 바로 이 어머니의 이 치매 증상이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지를 두고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많은 치매 소설에서 그러하듯이 어머니의 이 이상한 행동의 저 깊은 곳에는 ‘죄책감’이 아주 또렷하게 자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댁에 갔다가 예정보다 일찍 귀가한다. 그때 나와 어머니가 본 것은 불타고 있는 집과, 그 불타는 집에서 벌거벗은 채로 뛰쳐나오는 의붓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뛰쳐나온 의붓아버지를 좇아 동구 밖까지 달려가다가 문득 불타는 방에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결국 열네 살의 내 누이는 불타는 집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사건은 어머니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어머니는 울었다. 어머니는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밤새도록 울었다. 그때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히 몰랐다. 울어야 하는지 울지 말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머니가 울면서 그의 입을 틀어막는 것이 울라는 뜻인지 울지 말라는 뜻인지 알지 못했다.
 
나의 입을 틀어막으며 밤새 울던 어머니는 이후 “아들 하나만 둘쳐업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서 온갖 궂은일을 다해 가며” 나를 키운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누이의 죽음이나 의붓아버지의 존재는 완전히 나와 어머니 모두에게 은폐된 기억이 된다.

딸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 그것을 말로 꺼내기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은폐하고 싶은 기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랜 세월 그렇게 아픔을 견디며 살던 어머니에게 왜 갑자기 치매가 찾아온 것일까. 그 계기는 의붓아버지가 보낸 한 통의 편지였다.

그때부터 나는 이곳에 살고 있소. 당신이 정식이를 안고 떠난 후로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은 땅... 나는 내 죄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으로 왔소. 숯검정이 된 채 서 있는 감나무는 단 한 순간도 내가 죄인이라는 걸 잊어버리지 못하게 하오. 상기시키고 고발하고 정죄하고... 숯검정이 된 검은 나무는 내 안쪽의 검은 죄를 표상하며 그 자리에, 하늘 아래, 해 아래 서 있는 것이오. 몇 년 전부터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며 살고 있소. 물만 마시며 살 생각이오. 이미 오래 전에 나는 검은 나무에 동화되었소. 뒤란에 숯검정이 되어 서 있는 나무가 곧 나요.

이 작품의 제목인 ‘검은 나무’의 모티프가 되기도 하는 이 편지는 15년 동안 부쳐지지 못한 채로 있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어머니에게 전달된 것이다. 나는 우연히 보게 된 의붓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그가 속죄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편지를 받은 이후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파렴치한 의붓아버지가 가해자요 당신은 피해자라고만 규정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한 통의 편지를 통해 이러한 생각의 축이 무너지고, 결국 당신의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던 죄의식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쫓아가는 대신 성폭행까지 당한 채 불타는 방에 있던 누이를 어떻게 해서든 구했어야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아버지의 성폭행으로부터도, 불로부터도 지켜내지 못했다. 이것이 어머니의 ‘죄의식’이다. 어머니는 부도덕한 남편으로 인해 자식을 잃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불난 집에 남겨진 자식을 잊어버리고 죽음으로부터 구하지 못한 가해자인 셈이다. 오랜 세월 스스로 기억 너머에 단단히 봉인하고 있던 이 죄의식이 열리면서 결국 어머니의 의식은 과거로 쫓아가는 치매 증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20년 동안 당신의 안쪽 가장 깊은 곳에 유폐되어 있던 그 나무가 당신의 정신이 느슨해진 한순간을 노려 불쑥 떠오른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 당신의 꿈 위로 20년 동안 잠겨 있던 감나무가 떠오르는 순간, 당신이 그 불타는 기억으로부터 받았을 화상의 정도가 어떠했을지를 이젠 알 것 같아요. 당신은 봉인되었던 시간의 뚜껑에 금이 가자 그때까지 사생결단으로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놓아버린 거지요.

병리학적으로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치매 소설에서도 그러하듯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의식은 과거로 가 있다. 어머니는 지금 불난 집에 갇혀 있는 어린 딸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자신의 ‘소변’으로라도 불을 끄고자 하는 무의식적 행위인 것이다. 딸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의 발로이다.

나는 어머니의 유폐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죄의식과 의붓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난 후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아버지가 묻혀 있는 고향의 검은 나무로 향한다. 이것은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싸는 치유의 여정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숯검정인 채로 대지에 박혀 있었던, 그러나 이제 가지 한쪽으로부터 여리고 순한 잎을 피워 올리고 있는 감나무 아래 누워 있는 한 그루 나무의 몸을 보러 가는 거예요... 어머니는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가 그의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머니와 함께 고향의 그 집으로 가는 것은 어머니의 죄의식을 들어주고자 하는 행위이며, ‘어머니가 받았을 화상의 정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어머니의 아픔을 껴안아 주는 행위이다. 어머니의 치매는 기나긴 고통의 결과물이며, 누군가의 따뜻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마음의 병이다. 고통스러운 죄책감으로부터 이제는 ‘여리고 순한 잎을 피워 올리는 감나무’처럼 이해와 공감의 세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설 <검은 나무>의 빛나는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이 어머니의 아픔을 감싸고 치유하고자 하는 아들의 이러한 태도에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울고 있는 많은 자아가 있다. 하루 종일 어머니를 기다리며 울고 있는 네 살배기 자아, 이유도 모른 채 당한 이별 속에 외로워하는 자아, 자신이 저지른 배신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자아 등.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서 울고 있던 자아가 치매의 이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여러 소설 속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 <검은 나무>처럼 그 아픔을 무엇보다도 따뜻한 눈으로 껴안아 주는 모습은 지금까지 본 소설 중에는 없었다. 치매에 걸린 이들의 마음속에서 울고 있는 자아는 결국 누구나의 마음속에도 있는 자아가 아닐까. 그래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 속의 울고 있는 어머니를 껴안아 드리는 것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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