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회기 말, ‘치매’ 용어, ‘인지저하증’으로 바뀔까
21대 국회 회기 말, ‘치매’ 용어, ‘인지저하증’으로 바뀔까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4.26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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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윤 의원 발의로 치매 용어 개정 재추진
'간질'은 되고 '치매'는 안 된다?
차별과 고통을 겪은 치매 가족이 존재한다면 현장 목소리를 중시해야...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기윤 의원(국민의힘)은 ‘치매’ 용어를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상의 ‘치매’는 어리석을 '치(痴)'와 어리석을 '매(呆)'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한자어다. 이 때문에 치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환자와 가족에게 불필요한 모멸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 2011년 이후 치매 용어 개정 논의가 지속돼 왔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대만은 2001년 '실지증(失智症)', 일본은 2004년 '인지증(認知症)', 홍콩과 중국은 각각 2010년과 2012년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2013년 발표한 《DSM-5》에서 치매를 주요 신경인지장애(Major Neurocognitive Disorder)로 진단기준을 개정했으나, 치매는 'Dementia'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치매 기준에 비해 증상이 경한 환자에서도 임상적 관심을 기울이고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DSM-5: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 5차 개정판).

보건복지부가 2021년에 실시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서 국민의 43.8%가 치매 용어에 거부감을 보였고, 2021년 국립국어원의 조사 결과 과반수(50.8%)가 다른 용어로 대체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 유례없는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 환자 수가 급증해 2023년 기준 약 98만 명(65세 이상 노인의 10.41%)이 치매 환자로 추정된다. 치매에 대한 편견과 부정확한 정보를 개선하고, 치매에 대한 예방과 조기진단,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용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21대 국회 회기에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은, 2021년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지저하증),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인지흐림증), 2022년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인지증),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지이상증),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신경인지장애), 2023년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뇌인지저하증) 등이다.

이들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또는 행정안전위원회(이종성 의원 안)에 계류된 상태로 21대 회기가 종료되는 5월 29일에 자동 폐기된다.

한편 2021년 두 차례의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서 치매를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하는 안이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번에 강기윤 의원이 발의한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치매’를 모두 ‘인지저하증’으로 수정하되, ‘치매안심센터’는 치매뿐 아니라 비(非)치매·치매고위험군(경도인지장애 진단자 등)과 그 가족도 서비스 대상이므로, ‘인지저하증안심센터’보다는 대상자가 포괄적이므로 ‘인지건강센터’로 변경하는 안도 포함돼 있다. ‘인지건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고위험군과 일반주민, 가족 등도 대상으로 하는 인지건강 관련 세부 사업들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명에 담긴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개선하려는 사례로, 2011년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2014년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꾼 일이 있다.

정신분열증의 경우 사회적 이질감과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조현병으로 수정하기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려 국회 본회의에서 명칭 개정법률안이 통과했다. 간질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법제처 주도로 4년이 걸려 뇌전증으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간질의 경우 2010년 대한의사협회가 대한뇌전증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의 요청에 따라 용어심의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간질’의 공식 명칭을 ‘뇌전증’으로 고쳤다. 그러나 ‘치매’ 명칭 변경에 대한 견해는 다르다. 제21대 국회에서 치매 용어 변경을 6차례 시도했으나 결과를 얻지 못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치매’를 변경하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것이 우려된다며 ‘치매관리법 일부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왔다.

의협은 치매가 이미 진단명으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고, 치매 환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문제는 용어 변경이 아니라 치매관리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구축된 치매안심센터 등 치매 관리체계 중심으로 편견 및 인식개선 노력으로 순화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한편 대한뇌전증학회는 뇌전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간질 명칭 삭제 운동’을 전개하며, 뇌전증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간질 편견에 시달리지 않도록 ‘간질’을 인터넷에서 완전히 삭제하자는 뜻을 펼치고 있다. 4월 24일 전 세계 110개국 160개 회원 기관을 보유한 국제기구인 국제뇌전증협회(IBE, International Bureau for Epilepsy)는 우리의 ‘간질 명칭 삭제 캠페인’을 적극 지지한다는 공문에 “뇌전증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낙인, 차별, 인권 침해 해결에 협력한다”는 뜻을 보내왔다.

일본, 중국, 홍콩, 대만이 이미 용어를 개정한 ‘치매’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간질’은 되고 ‘치매’는 안 된다는 뜻의 저의는 알 수 없다. 이번 21대 국회 회기 말에 발의한 치매 용어 개정이 치매 인식개선과 치매 친화적 지역사회 조성에 계기가 된다면 국민적 합의를 반영해 더 늦기 전에 변경하는 것이 온당하다. 치매로 차별과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고 비슷한 근거로 명칭 개정을 간절히 원하는 가족의 의견이 다수 존재한다면, 법 개정은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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