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켐비’에 제동 건 유럽의약품청 자문위...약심위조차 열지 않은 한국 식약처
‘레켐비’에 제동 건 유럽의약품청 자문위...약심위조차 열지 않은 한국 식약처
  • 이석호 기자
  • 승인 2024.07.2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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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 CHMP “위험성에 비해 효능 크지 않아”...ARIA 부작용 심각성 부각
식약처, 전문가 숙의 과정 거쳤나...환자용 설명서 등 일부만 공개 “법인 등 영업상 비밀침해”
EMA 로고
EMA 로고

 

초기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제인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 Lecanemab)’의 유럽 시판에 제동이 걸렸다.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수반되는 레켐비가 그 위험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 진행 지연 효과는 미미하다고 결론지은 것이 이유다.

이에 반해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최근 레켐비의 허가 과정에서 공식 자문위 회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승인을 내줘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숙의를 거쳤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

 

유럽연합(EU)의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 26일(현지 시간) 레켐비의 시판 허가 거부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EMA에 따르면, 이번 허가를 신청한 에자이(Eisai)의 유럽 현지 법인 ‘에자이 Gmbh’는 이 같은 의견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EMA는 “의약품위원회(CHMP)에서 레켐비와 관련해 전반적으로 약물의 치료 효능이 위험성보다 더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이에 따라 시판 허가를 거부할 것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CHMP는 EMA 산하 자문기구로,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의 말초·중추신경계 약물 자문위원회(PCNS)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앞서 EMA는 올해 1월 레켐비의 CHMP 심의를 절차적 이유로 연기한 바 있다.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Biogen)이 공동 개발한 레켐비는 아밀로이드 베타(Aβ) 표적 단일 클론 항체 치료제로,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Aβ 플라크(Plaques, 덩어리)를 제거한다.

레켐비의 효과를 측정하는 주요 기준은 임상 치매 평가 척도-박스 합계(Clinical Dementia Rating Scale Sum of Boxes, CDR-SB)의 점수 변화다.

CDR-SB는 ▲기억력 ▲지남력 ▲판단력과 문제해결 능력 ▲외부 활동 참여 ▲가사와 취미 ▲위생 및 몸치장 6가지 영역의 질문 답변을 평가해 총점(0~18점)을 매기는 방식이다. 총점이 높을수록 인지 저하 증상이 심한 것으로 판정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레켐비의 임상 3상 ‘Clarity AD(301 시험)’ 결과에서 18개월 치료 후 투여군의 CDR-SB 점수는 1.21점이 상승했지만, 위약군에서는 1.66점이 올라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 저하 진행이 약 27%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CHMP는 레켐비의 투여군과 위약군 사이의 점수 차이가 작은 것으로 평가했다.

EMA는 이번 발표에서 “CHMP는 레켐비의 인지 저하 효과가 약물의 심각한 부작용 위험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며 “부작용의 심각성은 이 약물의 효과가 작다는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레켐비와 같은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는 뇌 속 Aβ 플라크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혈관 내 부종(Edema)이나 출혈(Hemorrhage)을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ARIA, 이하 아리아)’을 유발할 수 있고, 심각한 경우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만큼 부작용이 심각하다.

또 CHMP는 알츠하이머병 위험 유전자인 ‘ApoE4’를 보유한 환자들에게서 아리아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이 유전자가 2개인 ‘ApoE4 동형접합형’이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징후가 발견되는 비율이 95%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레켐비의 치료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CHMP의 우려다.

에자이와 바이오젠은 입장문을 통해 CHMP의 견해에 아쉽다는 반응을 내놨다. 린 크레이머(Lynn Kramer) 에자이 최고 임상 책임자는 "CHMP의 부정적 의견에 대단히 실망했다"며 "이는 더 넓은 알츠하이머병 공동체에도 실망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라이 릴리 홈페이지
일라이 릴리 홈페이지

 

한편, 이번 레켐비의 유럽 승인 실패는 이미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은 다른 국가들과 정반대의 입장으로, 항아밀로이드 항체의 알츠하이머병 치료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논란을 다시 한번 일으킬 전망이다. 레켐비는 미국, 일본, 중국, 한국에 이어 홍콩까지 총 5개 국가에서 허가를 얻었다.

최근에는 레켐비와 같은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인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의 키선라(Kisunla, 성분명 도나네맙 Donanemab)가 FDA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달 2일(현지 시간) FDA는 PCNS의 권고에 따라 키선라를 승인했다. PCNS 위원들은 키선라가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질병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효과가 있고, 약물의 위험성보다 효능이 더 크다는 판단하에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디멘시아뉴스>는 여러 차례 보도와 칼럼(본지 5월 28일자 <레카네맙은 과연 최소한의 ‘임상적 의의’를 충족시키는가?>, 5월 31일자 <도나네맙과 임상적 의미를 가지는 최소 효과>) 등을 통해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 임상 효과의 한계와 근본적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짚어왔다.

이들 약물이 Aβ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더라도 ‘임상적 의미를 가지는 최소한의 차이(Minimal Clinically Important Difference, MCID)’ 개념에서 모두 기준치에 달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MCID는 의료진과 환자의 관점에서 치료제의 효과를 체감하는 평가 변수의 최소 변화 또는 차이를 뜻한다. 두 약물은 MCID 측면에서 통계적 의미를 넘어 임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본지는 이와 함께 6월 18일자 <[단독] 치매 치료제 레켐비, 중앙약심위 안 거쳐...식약처 “필수 절차 아니다”> 기사를 통해 안전성·유효성 논란이 지속되는 레켐비의 품목 허가 과정에서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위)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다.

중앙약심위는 약사법 등에 근거해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조사·연구 및 평가에 관한 사항, 의약품 부작용 피해 구제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는 자문기구로, FDA의 PCNS나 EMA의 CHMP와 같이 식약처에 전문가 자문을 제공한다.

 

위해성관리계획 정보공개 청구 통지서(부분공개)
위해성관리계획 정보공개 청구 통지서(부분공개)

 

본지는 식약처가 지난 5월 24일 레켐비주의 수입 품목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중앙약심위 회의를 소집하지 않은 이유와 근거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다. 식약처는 지난 8일 회신을 통해 “허가·심사 과정에서 자문이 필요한 경우 중앙약심위 등 전문가 자문을 받고 있다”며 “레켐비주 또한 안전성·유효성 자료 등을 면밀히 검토·허가했다”고 밝혀왔다.

식약처의 답변에 따르면, 레켐비주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자료를 통해 면밀하게 검토한 뒤 허가했고, 심사와 허가 과정에서는 별도의 중앙약심위 자문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마디로 중앙약심위 회의가 필수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열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레켐비, 키선라 등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에 대한 논란은 업계와 학계에서 여전히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은 레켐비의 승인 과정에서 자문위를 통해 약물의 효능뿐 아니라 아리아 등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다.

CHMP는 이번 발표에서 “의견을 제시할 때 신경과 전문의와 알츠하이머병 환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신경학 과학 자문 그룹의 의견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식약처가 레켐비주의 국내 허가 과정에서 약물의 위험성과 관련해 어떻게 확보한 근거 자료를 토대로 어떤 전문가와 숙의했는지에 대해 공개된 자료만으로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이에 본지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레켐비주의 위해성 관리계획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 식약처 바이오의약품정책과는 현재 의약품안전나라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된 ‘환자용 설명서’와 ‘전문가용 설명자료’ 외에는 “법인 등 영업상 비밀침해”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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