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 등급’ 납득 안 돼 인정점수 물었더니...건보공단 “비공개”
‘장기요양 등급’ 납득 안 돼 인정점수 물었더니...건보공단 “비공개”
  • 이석호 기자
  • 승인 2024.08.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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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소견서도 무용지물...“등급 판정, 의료적 판단에만 의존 안 해”
기초 자료 없이 어떻게 검증하나...건보공단, 정보 공개 ‘요청’은 가능
국민건강보험공단 전경 /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전경 /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학 교수 출신 A(79) 씨는 지난 2022년 9월 15일 새벽 아내 B 씨가 갑자기 하반신 마비 증세를 보이자 119 구급대를 통해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후 병세가 나아지지 않자, 공단에 장기요양 인정 신청을 한 뒤 지난해 5월 3등급 판정을 받았다. B 씨는 하반신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 혼자서는 배변 관리나 체위 변경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7개월 넘게 B 씨의 재활 치료를 담당한 주치의 C가 장기요양인정조사표 기준에 따라 평가한 점수는 86.8점. 장기요양 2등급에 해당한다. 등급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던 A 씨 측은 판정에 불복해 재심사를 요청했다. C의 소견에 따르면, B 씨는 흉추부 척수손상에 따른 하지 완전 마비로 독립적 보행이 불가능하고, 일상생활 수행 시 거의 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단 측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공단 측에 1·2차 인정점수 공개를 요청했으나, 공단은 공정한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변호사를 선임한 A 씨 측은 올해 4월 공단을 상대로 공단의 등급판정 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국내 고령화 현실에 비추면 공단의 장기요양 인정평가 절차와 규정에 개선 및 보완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라며 “심사 내용과 관련한 정보가 철저히 비밀에 싸여 평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나 불합리한 점이 있어도 일반 국민은 알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환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이들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존엄한 노후 보장을 위해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신청자 수도 지난해 140만 명을 넘어섰다.

급속한 고령화로 향후 장기요양보험 수급자가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인 가운데 막대한 행정력이 투입되는 조사 과정에서의 정확성과 투명성, 신뢰도 문제를 두고, 주무 기관인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신청인 간 갈등이 첨예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요양 등급 판정에 따라 신청인의 경제적 부담 규모가 좌우되는 현실에서 공단의 역할과 책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한정된 인력으로 단시간 조사를 끝내야 하는 실정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인정 신청이 쇄도하는 상황에서 1~2명의 조사관이 현장에 나가서 짧은 시간 안에 환자의 심신 기능 상태나 일상생활 수행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A 씨 측 주장에 따르면, 1차 조사에 나섰던 조사관(1명)이 입원실이 아닌 면회실 출입구 앞에서 총 90개 항목을 조사하는 데 걸린 시간은 6분에 불과하다.

앞서 A 씨 측이 공단에 제출한 주치의 C의 소견서도 무용지물이었다. 등급 판정이 의료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주치의의 소견과 다른 판정에 위법한 점이 없다는 게 공단 측 주장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조사원의 정확성과 성실성에 의문이 들어 신청인 본인이 평가 점수 공개를 요청해도 공단에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기요양 등급은 ‘심신의 기능 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지표화한 인정점수(영역별 100점 환산 점수)를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삼아 매겨진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등으로 구성된 건보공단 소속 직원은 장기요양인정조사표에 따라 신청인의 심신 상태를 나타내는 항목 52개(▲신체기능 12개 ▲인지기능 7개 ▲행동변화 14개 ▲간호처치 9개 ▲재활 10개)를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이는 의사 소견서와 함께 등급 판정에 기초 근거로 쓰인다.

하지만 A 씨 측이 <디멘시아뉴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등급 판정 절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정점수 등 심의 관련 자료를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는 신청인이 어느 항목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없어 사실상 조사 결과에 대한 검증이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심사 점수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요청한다고 해도 비공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공단 측 입장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을 들어 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신청인의 주장과 맞선다. 조사관이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았거나 부실하게 평가했다는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공단이 기초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신청인 스스로 입증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A 씨 측 사례에서 공단은 심사결정서에 접수일, 답변서 제출일, 현지 방문 조사 일자를 사실과 다르게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 심사 절차의 허점을 보였다. 공단 측은 단순 오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A 씨 측 입장에서는 등급 판정 심의 과정에서 엉뚱하게 제삼자 조사 결과와 혼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A 씨 측은 이달 말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디멘시아뉴스>는 공단에 장기요양 등급 판정에 이의가 있는 경우 인정점수 관련 자료의 정보 공개 요청이 가능한지 여부를 질의했다.

이에 대해 공단은 “정보 공개 요청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또 <2020~2023년 장기요양인정·장기요양등급판정 불만 관련 행정소송 제소 및 피소, 소송 결과(승·패소) 현황 자료> 요청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혀왔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질의 회신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질의 회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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