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경 칼럼] 레전드 아나운서의 인생 3막
[신은경 칼럼] 레전드 아나운서의 인생 3막
  • 신은경 전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9.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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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까지 더 나아지려는 사람과의 만남

후배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다른 사람의 개인 유튜브 출연은 처음이다. 그동안 자주 연락을 하거나 만나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만날 때마다 정중하고 세심하고 다정해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라면 출연하는 게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결이 비슷한 성정을 지닌 후배여서 더 안심이 되었다.

후배지만, 지혜롭고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하는 일이라면 나도 따라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예컨대,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의 실천 같은 것이다. 장 건강을 위해 장내미생물에 좋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 거친 곡물, 견과류 등을 챙겨 먹는다고 했다. 후배의 안내에 따라 매일 아침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한 접시에 차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보았다. 울긋불긋 색깔이 예뻐 눈도 입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또 한 가지는 아침에 일어나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세 페이지 글을 쓰는 모닝 페이지 리추얼이다. 이 습관의 좋은 점을 듣고는 당장 그날로 노트를 마련했다. 일 년 이상을 꾸준히 쓰다 보니, 나도 책이 한 권 나왔다.

유튜브 촬영은 그녀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영상을 통해 그의 집 응접실에, 부엌에, 정원식물에, 벽에 걸린 그림에 익숙해져 있어서 낯설지가 않았다. 짙은 자주색 긴 소매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후배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준비하고 있었다. “내 옷이 너무 무겁죠?” 했더니, 얼른 들어가 진한 블루의 긴 소매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왔다. 내가 맨발에 덧양말을 신었더니, 자기도 덧양말을 신고 나왔다. 출연자를 배려하는 감성지수가 높다.

그녀가 만들어 준 쑥차를 마시며 촬영을 시작했다. 전문 촬영팀이 현장에서 작업을 했다. 한 달에 두 번쯤 이렇게 와서 촬영과 편집을 돕는다고 했다. 나와는 두 편을 만들 계획이다. 하나는 최근에 나온 나의 책 《잠언 읽고 잠언 쓰자》에 대한 얘기를 나눌 <인생 책방>, 또 한편은 <피플 앤 컬처>라는 부제의 인터뷰다.

책 이야기 녹화를 먼저 시작했다. 그런데 사석에서도 오랜만인지라, 반가운 안부와 인사가 자꾸 앞섰다. 왜 아나운서 선배인 나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지 그런 얘기를 자꾸 하는 바람에 웬만해선 책 이야기로 진입이 안 되었다. 과감하게 녹화를 중단시키더니, 인물 인터뷰로 방향을 바꾸어 다시 시작한다.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답게 상황 대처가 영민했다.

후배는 아나운서를 선망하던 여고생 시절, 밤하늘 별처럼 저 멀리 저 높은 곳으로 보인 TV의 신은경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아나운서가 되었는지, 처음 뉴스 진행할 때 어땠는지, 그렇게 유명해져서 바깥 나들이하기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뉴스 하다가 외국어 대학교 통역대학원은 어떻게 다니게 되었는지, 공부와 일을 어떻게 병행했는지, 그러다가 주말 단독 앵커를 하게 됐을 당시 반응은 어땠는지, 갑자기 영국으로 유학 갈 결심은 왜 한 건지, 가서는 어떻게 지냈는지 끝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결혼은, 정치가의 아내라는 낯선 역할은 어떻게 해 냈는지,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이후 대학교수로, 공공기관의 장으로 지낸 세월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방송국에서 10년 일찍 은퇴한 자신의 경험과 빗대어 공감하며, 나의 대학교수 조기 은퇴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이후 이야기는 인생 3막을 살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의 경험과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신은경 선배님은 후배들에게 언제나 존댓말을 쓰시네요. 후배들에게도 배울 만한 것은 곧바로 받아들이시는 걸 보니 꼰대가 아니시네요” 하며 은근히 칭찬 섞인 말을 해 주었다.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며 한 사람의 인생에 궁금한 점이 많다는 것, 그 많은 선배 중에 관심이 지대했다는 걸 표시하며 출연자의 입을 여는 능숙한 인터뷰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만나기를 고대했다는 걸 알게 될 때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 한번 깊이 느꼈다.

대서사시를 쓰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촬영 카메라맨이 중간에 녹화 테이프를 교체했다.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국 방송 채널에 프라임타임 뉴스 앵커를 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전 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에, 나는 겸연쩍어서 올림픽 메달을 딴 젊은 선수들의 말투를 흉내 내어 설명했다. “그땐 채널이 몇 개 없었어요. 그 시절 웬만해선 9시 뉴스를 시청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죠.”

1980년 12월 1일, 여러 개의 방송사를 통폐합해 코끼리처럼 거대해졌던 KBS가 드디어 1981년 5월, 신입사원을 모집했고, 나는 KBS 공사 8기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해였다. 석 달간의 연수를 마치고, 처음 방송하는 날, 라디오 이동방송차 리포트를 배정받아 남산에서 서울 시내 교통상황과 날씨 등을 5분간 생방송으로 전하고 돌아왔다. 선배님들의 혹독한 방송 평을 들을 거라고 노심초사하며 아나운서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실장실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부터 9시 뉴스를 하세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입사 시험 때 면접관이 물었다.
“가장 맡고 싶은 프로그램이 무엇인가요?”
“뉴스 진행을 하고 싶습니다.”
“당장 시키면 할 수 있겠어요?”
“아, 당장은…. 하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꼭 해보고 싶습니다!”

3개월 전에 합격을 위해서 원대한 포부를 말하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급했다. 아무 준비가 없던 터라 선배들이 옷을 빌려주고 머리를 빗기고 분장을 도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앉은 9시 뉴스 앵커석에서 첫날, 나는 해외토픽과 날씨 단 두 건의 뉴스를 읽었다. 온몸에 땀이 흘러 옷이 흠뻑 젖었다. 그렇게 KBS 9시 뉴스 앵커가 됐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 애송이 아나운서가 9시 뉴스에 발탁되자 여기저기 인터뷰 요구가 많았다. 나는 철이 없어 신문 인터뷰를 하는데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 기자는 ‘달리는 호랑이 잔등에 탄 기분’이라고 헤드를 뽑았고, 내가 직접 하지도 않은 말을 제목으로 썼다고 나는 투덜거렸다.

7년 정도를 남녀가 함께 진행하는 주중 평일 공동 앵커를 하다가, 승격해 여성 단독 주말 9시 뉴스 진행을 맡았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서 취재를 와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사실 주말 뉴스는 당직 남자 기자나 아나운서가 돌아가며 맡아 하던 자리였으나, 여성이 혼자 도맡아 “안녕하십니까”를 시작했으니 관심이 집중돼 레전드로까지 인정받았다.

후배는 그렇게 잘 나가다가 왜 그만두고 유학을 가게 됐는지 물었다.
“박수 칠 때 떠나자고 생각했지요. 뉴스 앵커로서는 최고의 자리를 누렸는데, 어느 때인가는 내려오는 날이 있을 테고, 그날을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박수 칠 때 새로운 도약을 위해 스스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거죠.”

박사학위까지 받아 오는 동안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나 분명 잘한 일이었고 보람이 있었다. 그 덕분에 대학교수로 일할 기회도 찾아왔다. 그사이 방송국은 퇴사했다.

그렇게 한 편의 녹화를 끝내고, 다시 책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에서 이야기를 실컷 한 덕분에 이번에는 곧바로 책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의 인터뷰를 위해 그녀의 책 《어른 연습》을 새벽 1시까지 다시 읽고 왔노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며 고마워했다. 인터뷰 진행자가 질문을 위해 출연자의 책을 읽고 오는 것은 당연한데, 그 반대의 경우는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나를 인터뷰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왜 출연자로 나를 선택했을까, 내게서 무엇을 알고 싶어 할까. 그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이고 왜 하고 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나도 궁금했다. 그래야 진행자와도 유려한 라포르 형성과 공감이 가능하니까. 인터뷰 전문가인 그녀는 그 부분을 무척 감동적으로 받아들였다.

필사를 위한 잠언 31장 함께 쓴 나의 묵상 글을 번갈아 몇 편 읽었다. 걱정 리스트를 기도 리스트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후배의 마음에 와닿았다고 한다.

“선배님, 드릴 게 있어요.”
내게 줄 선물로 어제 스페인 찬 수프를 만들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만들었다며 차갑게 식혀둔 가스파초(gazpacho)를 건넨다. 정성 가득 담긴 서프라이즈 선물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다고 텀블러에 레몬 물과 견과류 간식도 챙겨주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오유경TV 축복합니다, 신은경’이란 리본 글을 새긴 호접란 화분 하나를 남겨놓고 왔다.

‘성공한 사람’이라 함은 누구도 그를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이름 석 자 외에 일체의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과연 내가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앞도 뒤도 없이 이름 석 자만 썼다. 앞으로도 그런 선배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의 일을 축복했다.

오유경은 주목받는 아티스트를 인터뷰하며, ‘평창동 1번지’라는 복합 문화공간을 짓고 있다. 이렇게 유튜브를 통해 쌓여가는 그녀의 콘텐츠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급하지 않게 꾸준히 만들어가는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여 멋진 아카이브가 될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세련되게 편집된 최종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후배는 이렇게 썼다.
‘삶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며 그때에 맞게 변신했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 준 신은경 선배님의 은퇴 후의 삶은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어른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스무 살 오유경의 본보기 신은경 선배님은 인생 3막에서도 저의 롤모델입니다.’

인생 3막을 인생 전성기로 누리기를 바라는 두 여성이 어른 연습을 제대로 한 하루였다.

 

신은경
전 KBS9시뉴스 앵커
전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KYWA) 이사장
1981년 KBS 8기 아나운서, 3개월 연수 후 KBS 9시 뉴스 앵커로 12년간 뉴스 진행
《9시 뉴스를 기다리며》, 《홀리 스피치》, 《신은경의 차차차》,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잠언 읽고 잠언 쓰자》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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