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레일 위에는 다섯 명이 묶여 있습니다. 기차가 그대로 달리면 이들은 모두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옆에 사이드 레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레일에는 한 명만 묶여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선로 스위치 레버 앞에 서 있습니다. 이 레버를 당기면 다섯 명은 살릴 수 있지만, 한 명은 죽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1967년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루스 풋(Philippa Ruth Foot)이 제시한 윤리학의 사고 실험인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입니다. 이후 마이클 샌델 교수가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사고 실험은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철학적·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요? 더 나아가, 트롤리 딜레마에는 여러 변형된 질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일이 하나뿐이고 당신 옆에는 몸집이 큰 한 사람이 서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사람을 레일로 밀어 떨어뜨리면 기차가 멈춰 다섯 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사람을 희생시켜서 기차를 멈추겠습니까? 등 여러 변형으로 우리를 더욱 곤혹스러운 질문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한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다섯 명을 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공리주의적인 사고로, 더 많은 사람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단순히 선로를 바꾸는 경우와 내 옆의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경우는 결과적으로 똑같이 한 사람을 희생해서 다섯 사람을 살리지만, 이 두 행위가 도덕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하기에는 무언가 달라 보입니다. 이런 윤리 철학에 문외한인 이공계 출신인 제가 보아도 말이죠.
2024년 2월 6일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해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하며, 이 늘어난 정원은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집중 배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 이후 전공들은 반발해 병원을 사직했고, 이후 의료 현장 곳곳은 붕괴하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은 당장 눈앞에 보도되는 응급실 뺑뺑이만 보이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의사인 제게는 응급실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제때 수술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과거 세월호가 서서히 가라앉을 때 실제로 그 광경을 우리가 눈으로 보며 재난의 현장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현재 벌어지는 일들은 국민 대부분이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살 수도 있는 사람이 돌아가시거나, 장애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장애가 생겨도 당사자나 가족이 아니면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눈에 안 보이니 걱정이나 두려움이 덜한 거지요.
딜레마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흔히 딜레마라는 단어를 혼돈이나 절망과 같은 의미로 잘못 사용하지만, 이 말의 어원은 ‘di’(두 번)와 ‘lemma’(제안, 명제)의 합성어입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가치 중립적 표현입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문제 대부분은 다양한 해결 방법이 있고 우리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해결책 하나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고통스러운 선택지가 하나, 둘, 혹은 셋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답답한 상황이지요.
그러니 딜레마는 원래 가치 중립적인 말이지만 일상에서는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의사들에게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잘 움직이지 못하는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처음에는 치료 효과가 좋지만 환자의 병이 진행되거나 다른 의학적인 병이 발발하는 경우 파킨슨병 약을 쓰면 몸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돼도 환청, 환시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반대로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정신 증상은 좋아지지만 몸이 안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두 가지 모두 좋아지는 방법을 찾으려 해도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또 응급실에 의사가 혼자 진료하는데 살인범인 환자와 소녀가 동시에 들어오고 둘 다 긴급히 치료를 해야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혼자 수술 중에 환자에 이상이 생긴다면, 수술을 계속 진행하는 방법과 그 자리에서 포기하고 봉합만 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렇게 의사들은 끊임없이 윤리적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딜레마처럼 아주 협소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도 고통이 따른다면 무슨 선택을 해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유연한 해결책을 찾고, 팀원들과 협력해 환자에게 제일 나은 선택을 제공합니다. 원천적으로 이런 경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의사 자신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면 이런 딜레마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의료진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롤리 딜레마 같은 극단적인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위의 트롤리 딜레마를 개인적으로 가장 잘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만약 저라면 솔직히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 그 자리를 뜰 것입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으면 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환자를 포기하고 이 환자만 보거나, 아니면 이 환자를 죽게 하거나 하는 상황에서 119 이송 문의 전화가 오면 “우리 병원은 여력이 없어 환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 진행 중인 의료 대란은 이 정책을 입안한 정부의 고위 정책책임자가 생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부 정책 관계자자는 본인들이 생각한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지만, 제 개인적 생각에 이들에게는 두 가지 선로만이 있으며 기차는 다가오고 선로 변환 스위치를 잡고 결정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선로는 변경된 입시, 즉 의대 증원을 유지하고 의료 대란은 내년까지 지속되는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선로는 입시 제도를 원래대로, 즉 의대 증원을 취소하고 의료 대란을 조기에 수습하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옳은지, 최근 유행하는 AI에 질문했습니다. AI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의료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의료 시스템의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입시 체제의 혼란은 단기적이며 조정 가능한 문제로, 장기적인 의료 공백을 피하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가 더 바람직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AI에게 사고 훈련을 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만약 너의 집에 의대 진학을 원하는 고3 수험생과 자주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오가는 가족이 같이 있다면 너는 의대 증원을 하는 것이 옳아? 아니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옳아?” 이에 AI는 답합니다. “이 질문은 윤리적이고 감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다룹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의료 대란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입시 제도 혼란은 나중에 해결할 수 있지만, 생명을 잃으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가족의 상황에서도 생명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우선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따라서 의대 증원 정책은 일단 유예해야 합니다.”
AI는 트롤리 딜레마에서 완벽한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공리주의적 접근이 사람에게도 AI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정책의 의도가 어떻든 현실적으로는 이 의료 정책 때문에 피할 수 있는 죽음이 몇 명에게라도 발생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죽음의 대상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정부의 고위 정책책임자와 이에 동조한 사람들은 현재 이런 죽음에 얼마나 개입돼 있는가(여기에는 그렇게 느끼는가 하는 것도 포함)와 두 번째로 그 죽음이 얼마나 불가피한 것인가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해 가는 것을 보았을 때 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은 실제로 세월호 침몰에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아니어도 우리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세월호에 있던 학생들의 죽음이 불가피한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지금도 계속 일어나는 불합리한 교통 정책이나 법규로 인해 알게 모르게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죽음에 개입돼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통사고의 죽음은 있을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 차이가 같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자, 여러분은 의료 대란이라는 기차의 선로에서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는지요?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현 용인효자병원 진료부장, 연세대학교 신경과 외래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동대학 석·박사 취득
2000년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Marquis Who's Who 등재
2006년 대통령직속 산업의학 발달위원회 전문위원
저서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담장 너머 치매》,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