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논란 중인 레켐비 중앙약심위 안 거친 이유에 식약처 “필수 절차 아냐”
세계 최초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평가받는 항아밀로이드 약물 ‘아두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의 국내 허가 신청 과정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법정 자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중앙약심위)가 부정적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에 같은 항아밀로이드 약물 계열로 최근 국내 첫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 Lecanemab)’는 중앙약심위 회의조차 거치지 않아 의문이 인다. 더 나아가 회의를 열 경우 전 세계적으로 논란 중인 레켐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올 수 있어 건너뛴 게 아니냐는 특혜 의혹도 제기된다.
27일 디멘시아뉴스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링크)’ 등에 따르면, 중앙약심위는 지난 2022년 7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비즈센터에서 회의를 열고 아두헬름 허가와 관련한 안건을 심의했다.
이날 회의에 오른 안건명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허가신청에 따른 임상시험 성적의 타당성에 대한 자문’이다. 이 회의에는 생물-유전자재조합의약품 소분과위원회 구성원 및 전문위원 7명(신경과 교수 4명)을 비롯해 참고인 4명, 식약처 6명으로 총 17명이 참석했다.
바이오젠(Biogen)과 에자이(Eisai)가 공동 개발한 아두헬름은 알츠하이머병의 병리적 특징인 아밀로이드 베타(Aβ)를 제거하는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다.
바이오젠·에자이는 2020년 7월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에 아두헬름의 승인 신청서를 냈으나 의료계를 중심으로 임상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박이 줄곧 제기됐다.
특히 FDA 자문기구인 말초·중추신경계 약물 자문위원회(PCNS) 회의에서는 참석 자문위원 11명 중 단 1명(기권)을 제외한 나머지가 반대(8명)하거나 불확실(2명)하다는 의견을 내 사실상 만장일치로 추가 임상시험을 권고하기도 했다.
아두헬름의 임상 3상 시험 중 통계적 의미를 보인 ‘EMERGE’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조군의 임상 치매 평가 척도-박스 합계(CDR-SB)는 76주 동안 1.74점 증가했지만, 고용량 치료군이 1.35점 증가해 대조군보다 치료군에서 23%만큼 덜 나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단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 최소한의 차이(Minimal Clinically Important Difference, MCID) 측면에서는 효과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항아밀로이드 치료제의 특성상 혈관 부종(Edema)이나 출혈(Hemorrhage)의 ‘아리아(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ARIA)’ 부작용을 유발하는 등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의료계의 우려에도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은 2021년 6월 7일 ‘가속 승인 프로그램(Accelerated Approval Pathway)’을 통해 아두헬름의 시판을 조건부 신속 승인했다. 즉, 임상 효능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이를 예측할 수 있는 대리 결과변수(surrogate endpoint) 결과를 토대로 승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제약사는 임상 4상인 시판 후 조사를 통해 추가로 효능을 입증해야 한다.
이 같은 결과에 항의한 자문위원 3명은 사임하기도 했다.
FDA 승인 후 1년이 지나 국내에서도 아두헬름의 허가신청에 따른 중앙약심위 회의가 진행됐다.
참석자 발언이 익명으로 요약된 중앙약심위 회의록에 따르면, 해당 심의에서 아두헬름의 3상 임상시험 성적은 참석자 대부분의 반대로 확증적 임상 결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 참석자는 “환자를 위해서라도, ARIA 반응이 나타나고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데다 임상시험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한 약물을 허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치매 치료 영역에서 현재 치료제가 없어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통계적 관점으로 보면 실패한 임상이라는 점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위해성 부분에 대한 자문도 논의됐다.
참석자 중 “약제의 부작용으로 ARIA가 잘 알려져 있으나 이에 따라 임상을 중단하는 것은 10% 미만이었기 때문에 관리를 잘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긍정적 의견도 있었다.
이에 반해 “진료 현장에서 임상시험과 같이 엄격히 관리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 제품의 투여 경험이 없는 곳에는 환자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등 우려도 제기됐다.
중앙약심위는 “논의 결과 제출된 임상시험 결과는 확증적 임상시험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올해 1월 말, 결국 바이오젠은 아두헬름의 임상 및 판매를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17년간 개발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역시 에자이와 함께 개발한 레켐비에 더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레켐비는 아두헬름과 마찬가지로 가속 승인 프로그램을 통해 조건부 허가를 받은 뒤, 그해 7월 FDA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이후 일본과 중국에 이어 지난 5월에는 세계 네 번째로 한국에서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
하지만 레켐비는 아두헬름과 달리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 중앙약심위 회의를 거치지 않았다. 우리보다 앞서 레켐비를 승인한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보건당국 자문기구를 통해 허가 논의가 이뤄진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현재 레켐비를 둘러싼 논란 역시 이전의 아두헬름 못지않게 활발하다.
올해 7월, 유럽연합(EU)의 유럽의약품청(EMA)의 산하 자문기구인 의약품위원회(CHMP)는 “전반적으로 약물의 치료 효능이 위험성보다 더 크지 않다”며 레켐비 시판 허가를 승인하지 않는 것을 권고해 제약사의 발목을 붙들었다.
또 ‘랜싯 치매위원회(the Lancet Commission on dementia)’는 4년 만에 낸 보고서를 통해 레켐비를 비롯한 기존 항아밀로이드 치료제에 대해 언급하며 효능에 대해서는 인지 기능 개선이 미미하고, 임상적 의미와 효과의 지속 기간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다른 입장에서 최근 국제 학술지인 랜싯(The Lancet)은 ‘레카네맙을 둘러싼 분열(Divisions over lecanemab)’이라는 제목으로 “레카네맙의 효능 및 안전성에 대한 논쟁은 필요하지만, 규제 당국과 임상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증거와 진보를 계속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사설을 싣기도 했다.
근본적인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알츠하이머병은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치명적인 질환이다. 이에 따라 치료제 적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과 임상적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분야다. 설령 레켐비가 아두헬름보다 안전성·유효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여전히 거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본지는 지난 6월 18일 <[단독] 치매 치료제 레켐비, 중앙약심위 안 거쳐...식약처 “필수 절차 아니다”> 기사를 통해 레켐비 허가 과정에서 중앙약심위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한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진행 중인 신약의 국내 허가 과정에서 식약처 자문기구의 역할이 부재했던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레켐비와 관련된 논란에 부담을 느껴 중앙약심위 회의를 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한 질의에 식약처는 “허가·심사 과정에서 자문이 필요한 경우 중앙약심위 등 전문가 자문을 받고 있다”며 “레켐비주 또한 안전성·유효성 자료 등을 면밀히 검토·허가했다”고 회신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요청한 위해성 관리계획 자료에 대해서는 의약품안전나라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된 ‘환자용 설명서’와 ‘전문가용 설명자료’ 외에 “법인 등 영업상 비밀침해”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