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미 칼럼] 여론조사 유감
[유영미 칼럼] 여론조사 유감
  • 유영미 전 SBS 아나운서
  • 승인 2024.03.2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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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하나의 의미가 되는 꽃, 액티브 시니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계절이다. 봄꽃들을 기대하면서 모두가 바쁘게 움직인다. 요즘 가장 친절하고 겸손하며 바쁜 사람은 아마도 국회의원 선거에 관련된 사람이지 않을까. 전화로 많은 업무를 보는 현대인은 원하든 원치 않든 걸려 오는 전화를 그냥 무시하기가 껄끄럽다. 나 역시 가급적 시간과 상황이 될 때는 모르는 전화여도 받는 편이다.

전화가 울렸다. 무척 눈에 익숙한 번호다. 전화기 저편의 소리는 ARS 조사로 입력된 자동응답 소리다. “여론 조사 기관입니다. 귀하의 나이를 입력하세요. 1번 만 18세 미만, 2번 20대, 3번 30대, 4번 40대, 5번 50대, 6번 60대 이상….” 그 이후는 끝이다. 난 잠시 침묵했다. 혹시 다른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생각해 보자. 다른 연령대는 모두 10년 단위, 길어야 20년 안쪽인데, 유독 60대 이상만 100세 시대의 40년 세월을 아우르는 기간으로 설정한 게 아닌가? 40년을 한 단위로 세팅한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통념상 노년은 노화 시계의 속도에 따라 중년 같은 노년이 있고 노년 같은 중년도 있다. 노년은 노화의 가속화에 따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역할이 달라지기도 한다. 요즘은 90세가 되어도 본인의 생활습관과 노후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적잖은 세상이다.

현대과학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노화 속도를 늦추고 경제력을 갖춘 노인은 이미 삶의 질 향상과 성공적인 노화에 주안점을 두고 100세 시대를 맞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젊은 노인들이다. 55세에서 75세 연령대인 욜드(YOLD Young-old) 세대로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버니스 뉴거튼(Bernice Neugarten) 교수가 1975년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액티브 시니어는 적극적이고 독립적이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는 다르다’고 규정한다. 이들은 가치소비를 지향하며 여가를 찾는 세대로 자아존중감이 높고 자기 행복을 위해서는 과감한 소비도 할 줄 아는 부류다.

2018년 국가인권위 노인종합보고서는 청년의 80%가 노년에 대해 부정적 편견이 있다고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빈곤율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극복해 가야 할 과제다. 그러나 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우리 사회를 천편일률적인 도그마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65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둔 우리나라는 먼저 긍정적인 노화에 관한 인식개선이 시급하다.

안티에이징(Anti-Aging)을 넘어 웰에이징(Well-Aging)에 이르는 ‘뉴시니어’는 항상 배움을 즐기고 인생을 낙관하며 활기차게 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특성과 취향을 아예 무시하고 노인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폭력적인 사회 저변의 무심한 생각들, 대단위의 세팅에 그만 기가 질려 버린다.

선거철 귀찮은 여론조사를 아예 차단하자는 의견도 있다. 각종 정보가 난무하는 이때 각 여론조사기관은 MZ세대 비위만 맞추지 말고 평생 성실하게 책임을 다했고 개성 넘치게 현재를 사는 욜드 세대에게 그 나이에 맞는 선을 지켜 주길 바란다. 젊은 노인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봄, 굳이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읊조리지 않아도 너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는 꽃처럼 100세 시대 액티브 시니어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 느낌대로 말하고 일하고 투표하고 싶다.

 

유영미
전 SBS 아나운서
현 사단법인 한국아나운서클럽 사무총장
SBS 러브FM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27년 진행
<SBS 뉴스와 생활경제> 최장기 앵커

《두 번째 청춘》(나이 들수록 더 행복하고 더 우아하게 사는 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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